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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by Leo Tolstoy

   
   

Foreword By Martin Green

마틴 그린의 서문

   

You have in your hands one of those rare books that carry a direct message from the writer to the reader. And the message carries a charge, emotional and moral, that can in some people ignite an explosion of the heart and mind. It did so in one very notable case when an English translation was sent to a Hindu barrister in Natal, South Africa, in 1894. (It is worth noting that, the year before, the book had been suppressed on publication in its native country as being dangerous to church and state but had been translated immediately into English, with two versions appearing in 1894.)

여러분의 손에 작가로부터 직접적인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진귀한 책들 중의 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어떤 사람 들에게는 가슴과 마음의 폭발에 점화 시킬 수 있는 감정적 및 도덕적인 질책을 동반한다. 그것은 정말로, 영어 번역본이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변호사에게 1894년 보내졌을 때의 한가지 매우 유명한 사건에서, 그러했다. (그 전 해에 그 책은 책의 본국에서 출판에 대하여 교회와 국가에게 위험하다고 탄압을 받았으나 곧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1894년 두가지 버젼이 나타 났었음을 언급함이 좋을 것이다.)

That barrister was, of course, Mohandas Karamchand Gandhi, later the Mahatma of India, but at that moment only a timid young man, ill at ease in his profession and ineffective in the rest of his life. Reading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overwhelmed'' him, he said in his autobiography. "Before the independent thinking, profound morality, and the truthfulness of this book, all the books given me by Mr. Coates seemed to pale into insignificance."' (Mr. Coates was a Quaker who lent him books in an effort to convert him to Christianity.) In Gandhi the book certainly ignited an explosion; and its impact on others around him spread like the bombardment of particles in an atomic pile, so that before the chain reaction was over, the British Empire was blown open and India was a free country, under the aegis of nonviolence.

그 변호사는 물론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후일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로 일컬어졌으나, 그 당시 그는 단지 소심한 젊은 청년이었으며, 자신의 직업에 불안해 하였고, 그의 나머지 생애 동안 평범했었다. “하나님의 왕국이 당신 안에 있다를 읽음이 그를 압도했다”, 라고 그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독자적인 사고, 심오한 도덕성, 그리고 진실성 앞에서 코테스가 내게 준 모든 책들은 하찮은 것으로 빛을 잃은 것같이 보였다.” (코테스는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노력으로 책을 빌려 준 퀘이커 교도였다.) 간디에게서 그 책은 정말로 화약에 불을 당겼다; 그리고 그의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준 그 충격은 원자로에 입자들의 맹공격 같이 퍼졌다, 그래서 그 연쇄 반응이 끝나기 전에, 대영 제국은 폭발해 열리고 인도는, 비폭력의 후원 아래서 자유 국가가 되었다.

However, for most readers of 1984, and for casual readers of any date, the experience is not likely to be so vivid. At least if you begin with page one and read conscientiously every word, you may soon be yawning and riffling the pages to come. This is a book that should be begun at the end. The Conclusion is the chapter to read first; there you will find Tolstoy's writing at its most brilliant, and there you will feel yourself caught up in his passion of indignation against the empire under which he lived (empire meaning not overseas posses­sions but the imperial powers and splendors of the state), and it is likely that you will begin to see the empire around you in the same light. That is how Gandhi began to see the British Empire around him in South Africa and later in India. In 1894, Gandhi still believed in the British Empire, which means he believed it was not an empire in the Russian sense, but Tolstoy gradually changed his mind, as he may change yours.

그러나, 1984년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떤 날자든 우연히 읽은 독자에게는, 경험이 그렇게 생생할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당신이 첫 페이지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단어를 진지하게 읽어 나간다면, 당신은 아마도 하품을 하며 남아 있는 페이지들을 뒤적일 것이다. 이 책은 끝 부분에서 시작되어야 할 책이다. [결론]은 먼저 읽어야 할 장이다; 당신은 거기서 톨스토이의 가장 뛰어난 필체를 보게 될 것이며, 그리고 거기서 그가 살았던 제국(해외의 영토들이 아니라 국가의 황제의 권력 및 화려함을 의미함)에 대한 분노의 격정에 당신 스스로가 사로잡힘을 느낄 것이며, 당신은 아마도 당신 주위의 제국을 똑같은 빛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간디가 남아프리카와 후일 인도에서 그의 주위에 있는 대영 제국을 어떻게 보기 시작했는지를 말해 준다. 1894, 그는 간디는 대영 제국을 믿었는데, 그것은 그가 러시아적인 의미로서의 제국을 믿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러나 톨스토이가 점차 그의 마음을 변화시켰고, 그는 아마 당신의 마음도 바꾸어 줄 것임을 의미한다.

The beginning is slow because Tolstoy is developing an elaborate argument that was relevant for serious Christians of a hundred years ago, but is not so relevant now. Thus, Chapter 1 is a compilation of earlier Christian declarations of faith in nonviolence, and Chapter 2 is a polemic against the Russian Orthodox Church's interpretations of the Christian gospel. Many of the other chapters repeat the pattern of the first two.

시작은 완만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리 상관이 없지만 백년 전의 진지한 기독교인들에 관계가 있는 면밀한 논점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1장은 비폭력에 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 선언의 편집이며, 2장은 러시아 정교회의 기독교 복음에 대한 해석들에 대한 반론이고, 다른 많은 장들은 처음 두 가지의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

This arrangement follows from the book's function as one in a series of arguments that Tolstoy directed against the Christian ortho­doxy of his time and place. In order to break down people's religious complacency, he had to assemble as many witnesses on his side as possible, and had to refer back to what he had said before, and what his opponents had replied to him, and why that was no reply, and so on. This reasoning is a bit hard to follow at first, and readers must not let it distract them from following the important argument, which connects Tolstoy's analysis with the history of our own times as well as of his. Tolstoy writes with great clarity, with a kind of passion for logic and exactitude that lights up all the twists and turns of his discourse. It is not hard to follow, once you understand the rules. Sometimes it may be hard to like-to follow sympathetically, as it were-just because of this geometrical exactitude. I call it geometrical because of Tolstoy's fondness for mathematical metaphors, which express his ambition to make his argument as clear and completely demon­strable as Euclid's.

이러한 배치는 톨스토이가 그의 시대와 지역의 기독교 정교회를 겨냥한 일련의 논거들의 하나로서의 이책의 기능으로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의 종교적 자기도취를 깨트리기 위하여, 그는 가능한 많은 증인들을 그의 측면으로 끌어 모아야 했으며, 그리고 그가 이전에 말했던 것, 그의 적들이 그에게 대답한 내용들, 그리고 왜 그것이 대답이 되지 않는가, 등등을 언급해야 했다. 이러한 추론은 처음엔 따라가기가 약간 힘든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런 이유로 중요한 논점을 따라 감에서 시들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논점이야 말로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역사에 대한 톨스토이의 분석을 연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엄청난 명료함으로, 그의 강연의 모든 왜곡과 굴곡들을 밝혀주는 논리 및 정확함에 대한 정열로서 글을 써 나간다. 규칙들을 이해한다면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좋아함이-이를 테면, 공감을 하며 따라가는 것-바로 이러한 기하학적인 정확함 때문에 어려울 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톨스토이의 수학적 비유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기하학적이라고 부르는데, 그러한 비유들은 유클리드처럼 그의 주장을 명료하고 완전히 증명하고자 하는 그의 야심을 표현한다.

This mental cast can be disconcerting for literary readers, if they come to this book for more of that melting, swimming feeling of self-expansion, that rapture of identification with moonlight and lilacs, nightingales and spring rain, of which Tolstoy is so prodigal in his fiction. Such readers are going to be disappointed. Geometry is angular and meticulous, and so is Tolstoy's style in much of this book. Obviously he was aiming here at a different kind of seriousness; less seductive, suggestive, imaginative, and more se­vere, steel-hard, and even-toned. Probably he was deliberately trying to exorcise the magic of that "creative writing" with which he had held himself-and us-spellbound before. Men of religion have to be on guard not to seem men of sentiment. Gandhi and Vinoba Bhave, another Indian religious figure, are equally fond of mathema­tical and geometrical metaphors.

만일 그들이 이 책에서 자아의 팽창으로 가슴 뭉클하고 헤엄치는 느낌이나, 달빛과 라일락, 나이팅게일들과 봄비와의 일체된 환희를 좀 더 얻고자 한다면, 이러한 정신적 경향은 문학 독자들에겐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은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아주 많이 나타나는 것들이다. 그러한 독자들은 실망하게 되어있다. 기하학은 각이 지고 꼼꼼하다, 그리고 이 책의 많은 부분들에서 톨스토이의 문체도 그러하다. 그는 분명히 여기서 다른 종류의 진지함을 노리고 있다, , 덜 유혹적이며, 암시적, 상상에 의존하고, 더욱 엄격하고, 강철같이 강인하며, 균일한 어조로 말한다. 아마도 그는 고의로 이전에 자기 자신을-그리고 우리를-매료시켰던 창의적 필체의 마법을 몰아 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감상적인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간디 그리고 인도의 또 다른 종교적 인물인 비노바 바베는 똑같이 수학적이며 기하학적인 비유들을 좋아했다.

Once you have adjusted your expectations in those two ways, you should find the arguments and examples interesting in their own right. An American reader will be especially interested in the prece­dents that Tolstoy found in William Lloyd Garrison and Adin Ballou; forty or fifty years earlier, they had arrived at the same thinking and had acted on it. It may be worth adding a footnote to Ballou, whose work is discussed in the first chapter. Among the nonviolent Chris­tian community he established at Hopedale, Massachusetts, were two brothers named Draper who were mechanically gifted. They improved upon a piece of machinery vital to textile spinning, and wishing to exploit their invention commercially, they withdrew from the community. One of their sons served in the Northern army during the Civil War and rose to the rank of general; having entered politics, he was made ambassador to Italy, where his daughter mar­ried an impoverished Italian prince. Such was the speed at which- in America-the religious idyll of a Christian commune deteriorated into something like an international romance by Henry James. In Russia, however, the seed of nonviolent thought had other effects. It took root in Tolstoy's mind, and spread from him to South Africa and India.

당신의 기대들을 그러한 두 가지 방향에 조절하였으면, 당신은 주장들과 예시들을 그것들에 합당한 의미로서 흥미로움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인 독자들은 특히 윌리엄 로이드 게리슨과 에이든 발루에게서 찾은 선례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사십 또는 오십년 전에, 그들은 똑같은 생각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발루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은 첫번째 장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각주를 둠이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가 메사츄세츠 호프데일에 세운 비폭력 지향의 기독교 공동체 중에는 기술적 자질을 타고난 두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직물방적에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기계를 개선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발명품을 상업적으로 이득을 보고자, 그들은 공동체에서 떠나버렸다. 그들의 아들 중의 하나는 남북전쟁 중에 북군에 복무하였으며 장군의 지위에 올랐다; 정치에 입문하여 이탈리아 대사가 되었다, 거기서 그의 딸이 가난한 이탈리아의 군주와 결혼하였다. 이러한 것들이-미국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이상이 마치 헨리 제임스의 국제적인 무용담 같은 어떤 것으로 퇴락해 버리던 속도를 말해 주었다. 러시아에서는, 그러나, 비폭력의 사상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마음에서 뿌리를 내리고, 남아프리카와 인도로 퍼져갔다.

But that is something of an excursus. The essential context for this book is, of course, the story of Tolstoy's life. He grew up in an aristocratic and cultured family and in financial circumstances that combined some grandeur with much insecurity. It seems fair to say, summarily, that in his youth he knew Christianity as a religion for women, children, and servants, not for men. This does not mean that religion made no impact on him then; he responded to many aspects, some merely picturesque, some genuinely impressive. The road that ran along the Tolstoy estate was walked by many poor pilgrims, on their way to holy shrines; he knew of remarkable feats of asceticism, in the tradition of the Russian Orthodox Church; and members of his family, including his sister Masha, ended their days in monasteries. But, despite all that, the ethic and life-style of the men of his own caste were worldly, sensual, pagan, chivalric, military-in short, quite un-Christian. Tolstoy was born, as he often said, into the military caste in Russia. That caste believed no more in the virtue of chastity than it did in the meekness and nonviolence recommended in the Sermon on the Mount. His brothers inducted him, in early adolescence, into sex with a prostitute, and he began a career of quite animal sexuality, feeling scarcely any moral conflict or any sense of sin because Christianity had never been for him an articulated ethical code, as it was, for instance, for George Eliot. (Tolstoy later re­marked on that difference and on the advantage of growing up in a Protestant culture.)

그러나 그것은 여담과도 같은 것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물론, 톨스토이의 삶이다. 그는 관료주의적이며 교양있는 가정에서 그리고 약간 화려 하지만 매우 불안한 재정적 상황에서 성장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그의 젊은 시절에 그는 기독교를 부녀자, 아이들 그리고 하인들을 위한 종교이지 남자들의 종교로 알지 않았다. 이것은 그 당시 종교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약간은 단순히 악당처럼, 약간은 진정으로 감동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행동했다. 톨스토이의 저택을 따라서 가는 길은, 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많은 가난한 방랑자들이 걸어 다녔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금욕주의의 놀라운 위업들을 알았다; 그리고 누이 마샤를 포함하여 그의 가족들이 그들의 생을 수도원에서 마감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에 속한 사람들의 윤리와 삶의 모습은 세속적이며, 관능적이고, 이교도적이며, 기사도적이고, 군사적이었다-한마디로 말해서, 매우 비기독교적이었다. 톨스토이는, 그가 종종 말했듯이, 러시아에서 군인 계급 사회에 태어났다. 그런 계급은 산상 수훈에서 권고하는 유순함과 비폭력을 믿지 않는 만큼이나 순수함의 미덕을 믿지 않았다. 그의 청춘기에, 그의 형들이 유도를 하여 창녀와 성 관계를 가지게 하였으며, 그는 상당히 동물적인 성행위를 하는 삶을 시작하였으며, 거의 아무런 도덕적인 갈등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는데, 기독교는, 사실은 죠지 엘리어트의 경우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 결코 뚜렷한 윤리적 규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후일 청교도적인 문화에서 성장의 특징과 이점을 언급했다.)

Changing his sexual behavior after marriage, he in many ways shaped his life to conform to the ideal described by George Eliot and other English novelists-the ideal of the couple who marry for love and live in the country and devote themselves to their children and the pleasures of art. During the first two decades of his marriage he wrote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and lived by the religion of nature and art. A nature worshiper, he celebrated the flowing rivers, the melting ice, the singing birds, the mowing of the peasants. The apple orchards of Yasnaya Polyana were famous. His wife bore him thirteen children, and he emulated that creativity in the melting, protean, musical prose of his novels.

결혼 후에 성적인 습관을 바꿈에 있어서, 죠지 엘리어트나 기타 다른 영국 작가들이 묘사한 이상-사랑을 위해 결혼하며 나라에서 살고 자녀와 예술의 즐거움에 헌신을 다하는 부부의 이상-에 일치시키고자 그의 삶을 여러 면에서 다듬었다. 그의 결혼 후 처음 이십년 동안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 했으며 자연과 예술이라는 종교로 살았다. 자연의 숭배자로서, 흐르는 강, 녹는 얼음, 노래하는 새, 그리고 풀을 베는 모습을 찬양했다.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사과 과수원들은 유명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열세 명의 자녀를 낳아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창의성을 그의 소설들에서 감동적이며, 변화 무쌍하며, 음악적인 산문으로 옮겨 놓았다.

But he had remained very interested in religion, and had never lost his feeling for Christianity. Stimulated by conversation with his son's tutor, Alekseiev, who had been a revolutionary, he appealed in 1881 to Tsar Alexander III to pardon the assassins of his father, on Christian principles; and from that time on he was committed to nonviolence and religious radicalism. In the same year the Tolstoy family moved from their country home to Moscow, and there Tol­stoy witnessed the misery of that city's proletariat. He was now awakened in the morning by factory sirens instead of birdsong, and he took part in the city census to see for himself how the poor lived. In 1886 he wrote What Then Must We Do?, and along with that attack on the civic conscience he delivered another on the religious teaching of the Church.

그러나 그는 계속 종교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결코 기독교에 대한 그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의 아들의 가정 교사이며, 혁명가이던 알렉세이예프와의 대화에서 자극이 되어, 기독교의 신념들에 따라서, 그는 1881년에 황제 알렉산더 3세에게 그의 아버지를 살해범을 사면해 달라고 탄원을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는 뒤부터 비폭력과 종교적 급진주의를 띠게 되었다. 같은 해에 톨스토이의 가족은 그들의 시골의 고향에서 모스크바로 이사를 햇다 그리고 거기서 그 도시의 노동자 계급의 불행을 목격하였다. 이제 그는 아침에 새들의 노래소리 대신에 공장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깨어나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보고 싶어서 도시 통계조사에 참여했다. 1886년 그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썼다, 그리고 그러한 시민의 양심에 대한 공격과 함께 그는 교회의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다른 공격도 내어 놓았다.

Already in 1881-82 he was writing his Critique of Dogmatic Theology, in which he rendered judgment on a series of the Church's most important documents. He judged that these works were more blasphemous and faithless than those of Voltaire and Hume because they adapted the message of the gospel to quite opposite meanings, and perverted it morally and intellectually. Dogmata, such as that God is both three and one, meant nothing to Tolstoy. He dismissed the sacraments as "savage customs," suited to an earlier phase of civilization. Reading these books of theology would have made him an atheist, had he not independently found his way to a faith in Christ's message. "I had intended to go to God and I found my way into a stinking bog, which evokes in me only those feelings of which I am most afraid; disgust, malice, and indignation."*2 Church Christ­ianity stirred Tolstoy's most sardonic self to life.

이미 1881년부터 82년 사이에 그는 [교리적 신학의 비평]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일련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서들에 대한 견해를 내어 놓았다. 그는 그들이 복음서의 메시지를 상당히 반대되는 의미로서 채택을 하여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왜곡을 시켰기때문에 이러한 작품들이 볼테르나 흄의 작품 보다도 훨씬 더 모독적이며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하나님은 삼위이며 동시에 하나이다와 같은 교리들은 톨스토이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성례식들을 문명의 초기 단계에 적합한 야만적 관습 이라며 물리쳐 버렸다. 그가 자주적으로 그리스도의 메시지에서 그의 신앙의 길을 찾지 못했다면, 이러한 신학 서적들을 읽는 것이 그를 무신론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다가 가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썩은내 나는 수렁을 통과하여 나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이 수렁은 나 안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런 느낌들을 기억나게 한다: 혐오, 악의 그리고 분노.’ 교회의 기독교는 삶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장 냉소적인 자아를 일깨웠다.

As for his political views, in a short pamphlet of 1882, entitled "Church and State," he declared the phrase Christian State to be as paradoxical and nonsensical as hot ice, either such a state is no state, or, more likely, its Christianity is no Christianity. Kings, after all, are simply anointed robbers. Christ's teaching is hostile to the state, and Christians, though not called on to destroy it, are called on not to support it or to comply with many of its demands.

그의 정치적 시각에 대해서는, 1882교회와 국가 라는 제목의 짧은 팜플렛에서, 그는 [기독교 국가]라는 구절을 [뜨거운 얼음]처럼 역설적이며 무의미하며, 그러한 국가는 국가가 아니며, 아니, 더 그럴 듯하게 말하면, 그런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왕들은, 결국, 단순히 세례받은 강도들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국가에 적대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파괴하라고 부름받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지지하라고 부름받은 것이 아니거나 그들의 요구들 중의 많은 것들에 응하지 않도록 부름받았다.

In 1884 he finished What I Believe[My Religion], in which he described himself as having behind him five mature years of faith in Christ and thirty-five years of nihilism, or faith in nothing. He presented himself to the reader as one of the robbers at Christ's crucifixion, come down from the cross to preach. His conversion had occurred when he realized that "Resist not evil" (Matt. 5:39) meant what it said. This was a revelation to one who had always been taught that Christ's laws were not practical, and so must be interpreted-in effect, circumvented. What he had been taught as practical was quite opposite in tendency: "I was taught to judge and punish. Then I was taught to make war; that is, to resist evil men with murder, and the military caste, of which I was a member, was called the Christ-loving military, and their activity was sanctified by a Christian blessing."3 He had been involved in this contradiction very early because he was born noble, but nowadays, when military service and jury duty have become universal, all men are involved in it.

1884년 그는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의 종교)]를 탈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뒤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오년간의 성숙한 날 들이 있었고, 삼십오년간의 허무주의 또는 무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고 자신을 묘사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의 강도들 중의 한사람이라고 자신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그의 개종은 그가 악에 저항하지 말라(마태:5:39)’ 가 말해진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일어났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은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러므로 반드시 해석되어야 한다-사실상, 포장을 해야한다-고 언제나 가르침 받아온 사람에 대한 계시였다. 그가 실용적이라고 가르침 받아 온 것은 경향으로 보아 상당히 반대이다: ‘나는 심판하고 처벌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나서 전쟁을 하도록 교육받았다; 다시 말하면, 나는 악한 사람을 살인으로서 저항할 것이며, 군인계급은, 나 또한 그 일원이었는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군대라고 불렸으며, 그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축복으로 신성시된다고 교육받았다.’ 그는 이러한 모순에 매우 일찍부터 관계되었는데, 그가 귀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그러나 오늘날, 군역과 배심의 의무가 보편화 된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관계되어 있다.

 

 

Despite these blistering attacks on church and state (accompanied by others on high culture and marriage), Tolstoy continued to live at his ancestral home, to run his baronial estate, and to use the title Count Tolstoy. Renowned as Russia's greatest novelist, he was the father of a large family, the husband of a fashionable woman, and the host of a brilliant household. Why he felt he could not leave and take up a life in accord with his beliefs is too long a story to begin here. Suffice it to say that his consciousness of being in effect a hypocrite added to his pain.

이렇게 통렬한 교회와 국가에 대한 공격들에도 불구하고 (타인들에 의해서 높은 수준의 문화와 결혼을 동반하면서), 톨스토이는 그의 조상의 고향에 살면서, 그의 남작 저택을 운영하고, 그리고 톨스토이 백작이라는 작위를 사용하였다. 러시아의 가장 훌륭한 소설가로서 알려져 있으면서, 그는 대 가족의 아버지였고, 상류층 여자의 남편이었으며, 화려한 집안 사람들의 주인이었다. 그가 왜 떠나가서 그의 믿음을 따라서 살 수 없다고 느꼈는지는 여기서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긴 이야기이다. 자신이 사실상 위선자라는 의식이 그의 고통에 더해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Let us return to that exemplary reader of Tolstoy, Gandhi. Although The Kingdom of God overwhelmed him in 1894, it was not until 1906 that Gandhi's behavior showed itself indubitably in­fluenced by what he had read. In 1894 Gandhi was still largely in thrall to the British Empire and its constitutional politics and its promise of freedom through parliamentary democracy. Tolstoy's truths were profound but impracticable because they clashed with those other truths. But in 1906 Gandhi launched a campaign of nonviolent civil disobedience, or satyagraha, and was for the first time sent to jail. Then he rerea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and other Tolstoy stories and pamphlets, even translating one into his native language. We hear of him carrying these volumes from one jail to another. This happened in 1906 partly because only in jail did Gandhi have time to read but also because only now was he begin­ning to live out the radical truths he took from Tolstoy.

톨스토이의 전형적인 독자인, 간디에게로 돌아가 보자. 비록 [하나님의 왕국] 1894년 그를 압도하였지만, 그가 읽은 것에 의심할 바 없이 영향을 받은 간디 자신의 행동을 드러낸 것은 비로소 1906년에서 였다. 1894년 간디는 아직도 대체적으로 대영 제국과 그의 헌법적인 정치 그리고 의회 민주주의를 통한 자유의 약속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러나 1906년 간디는 비폭력인 시민 불복종 운동, 또는 사티야그라파를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감옥에 보내졌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와 다른 톨스토이의 이야기 및 팜플렛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는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우리가 듣기로 그는 이들 책들을 이 감옥에서 저 감옥으로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것은 1906년에 일어났는데, 부분적으로 오직 감옥에서야 간디가 읽을 시간이 있었으며 또한 이제서야 그가 톨스토이로부터 얻은 급진적인 진리들대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After that, Gandhi's eyes were on Tolstoy, across those thousands of miles of land and ocean, up to the old man's death in 1910. In 1908, when Tolstoy became eighty, Gandhi sent a message of con­gratulation. In 1909, he read Tolstoy's Letter to a Hindu, in which the author warned Indian revolutionaries against adopting the West's terrorist methods of agitation, and urged them to stay loyal to their native traditions of nonviolence. In 1910, launching another satyagraha campaign, Gandhi gave the name Tolstoy Farm to the place where the families of satyagrahis could lodge (while husbands or fathers were in jail) and where he led them in simplifying their lives-in practicing vegetarianism, nature cure, and all the other elements in the ideology of nonviolence.

그러한 일이 있은 후, 그 먼 수천마일의 땅과 바다를 건너서, 1910년 그 노인이 죽기까지 간디의 눈은 톨스토이에게 있었다. 1908년 톨스토이가 팔십세가 되었을 때, 간디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었다. 1909년 그는 톨스토이의 [힌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거기서 작가는 인도의 혁명가들에게 서구의 테러리스트의 선동 방법들을 채택함에 경고를 하였으며 그들에게 그들의 전통적인 비폭력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다. 1910년 또하나의 스타야그라파를 시작하면서, 간디는 스타야그라피스의 가족들이 기거할 수 있는 장소에 톨스토이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들을 이끌고 그들의 생활을 단순화하도록 이끌면서, 채식주의, 자연 치료, 그리고 비폭력 이념의 모든 다른 요소들을 실천하도록 하였다.

In the last months of Tolstoy's life, Gandhi sent him a copy of his manifesto, Indian Home Rule (written under the influence of Tolstoy's ideas) and the first biography of Gandhi, written by a Baptist minister in South Africa. So that, unforeseeably, Tolstoy at the last moment learned to know this infinitely remote and different man who was to become his heir. The last long letter that Tolstoy wrote was to Gandhi.

톨스토이의 생애의 마지막 달에, 간디는 그에게, (톨스토이의 영향아래 쓰여진) [인도 가정의 법] 이라는 그의 성명서와 남아프리카의 침례교 목사에 의해 쓰여진 간디의 첫번째 자서전을 보냈다. 톨스토이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후계자가 되고자 하는 이 무한히도 멀고 다른 사람을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쓴 마지막 가장 긴 편지는 간디에게였다.

This book was, then, the beginning of a romance-of two people coming together-and of an adventure, in which the paradoxical force of forcelessness, of nonviolence, entered into history and altered it. Soul force, as they sometimes called it, usually operates on a different wavelength from material or political force-its effects are not to be measured by the same standards. But every now and then, when one person induces others literally to believe in soul-force, it enters into bodies and masses and actions-a beam of light passes into solid matter and moves it. The book you hold in your hands is one of those sources of light.

이 책은, 그렇다면, 로망스의 시작-두 사람이 함께 함의 시작-그리고 모험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모험은 힘없음, 비폭력의 역설적인 힘이 역사에 들어와서 그것을 변화시켰다. 영혼의 힘은, 그들이 때때로 그렇게 불렀듯이, 물질이나 정치적인 힘과는 다른 파장에서 작동한다-그 영향은 똑같은 기준으로 측량될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 그대로 영혼의 힘을 믿도록 영향을 줄 때-한 줄기의 빛이 물체에 들어가서 그것을 움직인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 책은 그러한 빛의근원들 중의 하나다.

Notes 1. Mohandas Gandhi, An Autobiography (Boston: Beacon Press, 1957), pp. 137-38. 2. Leo Tolstoy, Complete Works of Count Tolstoy, ed. and trans. by Leo Wiener (Boston: D. Estes and Co., 1904), 22:180. 3. Ibid.,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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