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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속에 계신 그리스도”, 침묵 통한 발견과 실천


퀘이커(종교친우회) 서울모임

 

“선생님, 세례는 받으셨습니까?”
영국의 볼테르가 퀘이커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영국 내에서 널리 알려진 퀘이커 교도 한 사람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 교도는 “아니오. 나의 친우들도 모두 받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고, 볼테르는 “저런, 그렇다면 당신들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군요!”라고 은근히 말했다. 그러나 그 교도는 부드럽게, “우리들은 기독교 신자이고 또 좋은 신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지요. 하지만 기독교가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고 소금을 약간 뿌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괘씸할 수가! 불경스런 말에 화가 난 볼테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그는 온화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스도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는 결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요한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라고.
요한의 제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의 직제나 교리에 대한 추종자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고자 하는 무리들. 이들이 바로 퀘이커 교도이며 이것이 퀘이커의 핵심 원리다. 종교의 궁극적인 도(道)를 더욱 가리곤 하는 제도나 형식주의를 버리고 성령과의 내밀한 교류 속에서 평화와 공존의 삶을 실현하겠다는 것.
17세기 영국에서 종교개혁의 한 흐름으로 태동하게 된 이 공동체는 현재 미국과 영국 등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종교기구로 자리매김해 있으며, 특히 전쟁반대, 전시 또는 전후 구제사업, 사형제도 폐지운동 등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화운동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반 사회뿐 아니라 기독교계 내에서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퀘이커는 이미 반세기 전인 한국전쟁 직후에 구제활동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퀘이커(종교친우회) 서울모임. 회원 약 10명, 일반 참석자 약 10명으로 구성된 이 공동체는 현재 신촌에 있는 ‘퀘이커의 집’에서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곳은 십자가 종탑도, 강대상이나 피아노 한 대도 없는 단촐한 곳이었다.

침묵으로 드리는 예배

지난 18일(日) 오전 11시경. 10평 남짓한 공간에 일인용 의자만이 빙 둘러져 있다. 예배시간이 가까워오자 한두 사람씩 오는 순서대로 빈자리를 채우고 앉는다.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오는 사람 사이에 어수선한 인사도 없고, 각자 자리에 앉아 차분히 눈을 감는다. 11시가 넘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사회자도 목사도 없다. 더러는 바닥에 허리를 펴고 앉고 더러는 의자에 앉아 손을 모은 채, 느긋이 침묵을 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누군가 말을 할 법도 한데, 좀이 쑤시는 침묵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뒷산에 눈 녹는 소리와 여린 새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 새소리가 들리자 옆 사람 들숨날숨 소리도 들리고, 마음이 누그러진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게 느껴질 무렵, 예배가 끝났다. 꼬박 한 시간 동안, 찬송가 자락이나 성경 봉독도 없이 예배가 진행된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말문을 연 사람들 사이에, 해비타트 집짓기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얘기, 창밖의 흰 눈과 예배당 화분에 피어 있는 흰 꽃의 색이 어쩌면 저렇게 다르냐는 얘기 등 사사로운 삶의 단상들이 나눠졌다. 그리고 이 날의 모임은 <멈추지 않는 대량학살―대인지뢰>라는 다큐멘터리 자료 시청으로 이어졌고, 전쟁과 맞닿아 있는 한반도의 아픔, 평화실천에 대한 경각심을 공감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성경 한 줄 읽지 않았지만, 예수가 어느 때보다도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모든 개인의 내면에 ‘진리’가 있다

침묵예배. 이것이 이들의 일관된 예배 방식이다. 단순히 명상으로서의 침묵이 아니라, 모든 겉치레를 버리고 전심으로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기 위한 침묵. 그러나 예배 도중 누구라도 자신이 받은 감동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말하기도 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말을 나누든 나누지 않든 이들의 예배는 늘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 전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침묵을 한다고 해서 과연 성령의 임재가 가능한 것일까. 일정한 형식을 갖춘 예배에 길들여진 사람은 이런 의구심을 품어볼 만 하다. 평신도로서, 성경 한 줄 읽고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야 그나마 ‘감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모든 개인의 내면에 진리가 있다고 하는 퀘이커의 신학은 제도나 교리적인 의식에 구도(求道)방법을 얽어맬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것은 퀘이커의 창시자인 조지 폭스(George Fox)로부터 비롯된 신학으로, ‘속의 빛’이라고 함축할 수 있다. 속의 빛이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빛의 원천인데, 곧 ‘하나님’과 동일한 의미다. 폭스는 “이 빛만이 어떤 사람이나 책이나 문서 따위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앎에 도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고 말한다. 즉 각자의 속에 빛으로 존재하는 하나님과 외부에 우주적으로 존재하는 더 큰 하나님과 만나게 될 때 진리에 이르게 되고, 각 사람이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성경 또한 하나의 보조자료일 뿐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 대한 위대한 기록’인 성경은 이미 ‘속의 빛’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수단일 뿐인 것이다. 서울모임의 회원인 장영호 씨는 “일반 개신교단이 성서중심이라면 퀘이커는 성령중심”이라고 이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빛이 있어서 공동체적인 깊은 침묵을 통해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 이것이 퀘이커의 모임에 설교도 없고 성찬도 없고 목사도 없고 리더도 없이, 오직 동등한 공동체로서 함께 성령의 임재를 추구해 나가는 근거다. 그러나 ‘속의 빛’으로부터 시작된 퀘이커의 신학은 단지 신비적인 체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체험’은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의 시작일 뿐이다. 예배를 통한 성령의 체험, 그리고 그것을 삶으로 실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 과정인 것이다. 이들의 ‘삶의 실현’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종교에 있어서 이들은 ‘모든 종교의 궁극에는 진리가 있다’는 보편주의적인 입장이다. 종교전쟁이나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게 되는 배타성을 버리고, 다양함을 인정하는 ‘공존’의 방식 말이다. 이러한 보편주의적인 태도는 많은 기독교도들에게 시비를 받기도 했지만, 17세기 퀘이커 신학자인 로버트 바클레이(R. Barclay)가 “나도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것이 없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구원은 문자에 있지 않고 오히려 체험에 의한 깨달음에 있습니다”라고 변호했듯이, 그리스도에 대한 퀘이커의 신앙은 보편주의적인 태도 아래 확고하게 서 있다.
또한 이들이 삶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신앙의 형태 중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사회참여다. 이들은 전적으로 평화를 옹호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에 1,2차 세계대전 참전 거부로부터 시작해서 노예제도 폐지, 감옥개선, 핵무기 반대운동 등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평화운동을 벌여왔다. 이것은 전쟁반대와 인권운동, 정치적 개혁에까지 걸쳐 있는 폭넓은 사회참여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람 죽이기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에는 같이 곁들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징병령을 반대하고 나서서 즐겨 감옥에 들어가고, 남아 있는 교도들은 책임을 지고 그들의 뒤를 돌봐주며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 때까지 기독교에서 자랐으면서도 전쟁은 온전히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전쟁은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퀘이커 교도였던 함석헌 선생이 처음으로 퀘이커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던 경위를 설명하는 글이다. 함석헌 선생도 퀘이커 교도들의 평화에 대한 엄격한 실천, 그것에 감동받아 퀘이커가 됐던 것이다.

퀘이커 서울모임, 그 자리매김의 진통

미국의 퀘이커 봉사단이 한국전쟁 직후 군산도립병원을 중심으로 구제활동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지게 된 퀘이커는 1960년도 이후 함석헌 선생의 본격적인 퀘이커 가담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스승’이었던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성서와 퀘이커리즘 공부 등 신앙활동을 했다. 또한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참여에 대한 의식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1989년 함석헌 선생이 타계하고, 퀘이커 서울모임은 결코 작지 않은 내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글쎄, 스승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리더 없는 동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부딪힘과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다. 큰 스승이 떠난 자리에서 중심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란과 방황으로 침체되기를 10년. 10년 동안 그래도 퀘이커 정신을 붙들고 명맥을 유지해 오던 이들이 다시금 새롭게 모임을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누군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지만 이제 내부 갈등도 거의 해결되었고, 이제부터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퀘이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리고 ‘평화’와 직결되는 우리나라 통일 문제도 자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겠죠.”
모임의 서기를 맡고 있는 김형렬 씨의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퀘이커리즘에 대한 공부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갖고 있고, 평화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함 선생이 떠난 자리에서, 퀘이커로서의 새로운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50년 역사의 퀘이커 서울모임. 이들은 어쩌면, ‘신앙과 실천의 합일’이라는 퀘이커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데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 자체가, 영적인 갈구와 끊임없는 자기성찰 속에서 ‘길’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퀘이커는 어제도 그랬듯이, 지금도 종교로서의 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예배와 삶의 실현, 그 두 수레바퀴를 공동체 안에서 찾고자 끊임없이 진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곽성혜 기자 rullu@cnews.or.kr

*이 페이지의 기사는 [주간기독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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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