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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한국의 도교

 

한국의 도교

한국의 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특별히 교단을 형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교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봉건 권력이나 지식인뿐 아니라 민간신앙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성격

일반적으로 도교의 역사는 삼국시대의 중국도교 유입이나 고려시대의 의례 중심의 도교, 그리고 조선 중엽의 여러 인물의 행적이나 저술에서 드러나는 수련적 도교, 즉 내단(內丹)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에 비해 한국 도교의 원류를 고유의 신선사상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 즉 단군신화를 비롯한 건국신화를 신선사상의 표현으로 보거나 중국 도교의 발생이 해동(海東)의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 중엽에 조여적(趙汝籍)이 〈청학집 靑鶴集〉을 저술하며, 조선 단학(丹學)의 계보를 밝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조여적은 조선 단학의 계보가 광성자(廣成子)-명유(明由)-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문박(文朴)-영랑(永郞)-보덕(普德)-도선(道詵)-최치원(崔致遠)-위한조(魏韓朝)-편운자(片運子)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빙성은 없으나 조선 중기 도교적 수련에 관심을 지닌 지식인들의 민족의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같은 입장은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를 쓴 이능화(李能和)에게서도 두드러지며 오늘날에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으나 그 사실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수용과 전개

한국 도교의 시발은 624년(영류왕 7)에 당(唐) 고조가 고구려에 도사(道士)를 파견하여 천존상(天尊像)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론하게 한 일이다. 이전에도 중국의 오두미교를 고구려인들이 신앙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643년(보장왕 2)에는 연개소문이 도교를 들여와 천하의 도술을 다 갖추어야 한다는 건의를 하여 당으로부터 숙달(叔達) 등의 도사와 〈도덕경〉을 들여오고 도교를 유교나 불교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고구려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승려 보덕(普德)이 백제 땅이던 완산주(完山州)의 고대산(孤大山)으로 이주하는 등 불교측의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다. 신라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이나 그의 증손인 김암(金巖) 등이 도교적 방술에 능통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보다는 신라 하대 유당학인(留唐學人)들에 의한 수련도교(修練道敎)의 유입이 보다 중시된다. 도교가 극성하던 당에 유학한 신라 하대의 지식인들 중 김가기(金可紀)·최승우(崔承祐)와 승려 자혜(慈惠)는 천사(天師) 신원지(申元之)의 알선으로 종리권(鍾離權)으로부터 여러 도서(道書)와 구결(口訣)을 전수받고 수련하여 단(丹)을 이루었다. 이중 김가기는 중국의 도교전적인 〈운급칠첨〉 중 속선전(續仙傳)에 의하면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당에서 백주등선(白晝登仙)했다고 하며 유당학인인 최치원과 이청(李淸)에게 구결을 전수했다. 최승우와 자혜는 신라에 돌아와 후인들에게 도요(道要)를 전수했다. 이로써 한국에 처음으로 중국의 수련적인 도교가 전해져 이후의 도맥(道脈)을 형성했고, 이러한 한국 도맥의 서술은 조선 중엽에 한무외(韓無畏)가 저술한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에 의한 것으로 그 실제적인 전승과 내용은 신빙성이 약하다.

고려시대의 도교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왕실의 복덕을 비는 국가의례 중심의 과의(科儀) 도교가 성했다고 평가된다. 기록으로는 현종 때부터 재초(齋醮)가 행해졌다고 하나 가장 성행한 것은 예종 때이다. 예종은 송(宋) 휘종(徽宗) 치하의 문물제도를 거의 받아들였는데, 휘종은 대단한 도교 애호가였다. 예종의 대표적인 도교숭상 사례가 복원궁(福源宮)의 건립과 30여 회에 걸친 재초의 시행이다. 복원궁 건립은 고려시대 최대의 도교 연구자인 이중약(李仲若)의 건의에 따라 건립되었다. 이중약은 어려서부터 〈도장 道藏〉을 즐겨 읽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도서를 읽고 수도생활을 했으며 도교적 의술도 연구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도교는 이처럼 국가와 왕실의 소재초복(消災招福)을 비는 의례 중심의 도교로서 수련적 도교에 대한 기록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국가의례 중심의 과의적 도교였던 것만은 아니며 의학의 발전과 수경신(守庚申)과 같은 민간 풍습의 형성 등 이후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이 컸다.

조선시대의 도교

조선시대에 와서 고려시대의 과의적 도교는 초기에 왕실의 비호 아래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했으나 성리학적 이념과 의례를 절대시하는 유림의 득세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감히 제후의 나라에서 천지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재초를 거행할 수 없다는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 사림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1518년(중종 13) 재초 담당 관청인 소격서(昭格署)가 혁파(革罷)되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교적 흐름은 수련도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저술은 한무외(韓无畏)의 〈해동전도록〉이다. 한무외는 이 저술에서 조선의 도맥이 태상노군(太上老君)-위백양(魏伯陽)-종리권(鍾離權)-최승우(崔承祐), 자혜(慈惠)-최치원(崔致遠), 이청(李淸), 명오(明悟), 김시습(金時習)-서경덕(徐敬德), 홍유손(洪裕孫)-곽치허(郭致虛)를 거쳐 자신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태상노군은 노자(老子)를 가리키며, 위백양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연단(煉丹) 중심의 당 도교에 〈주역〉과 황노(黃老), 즉 황제와 노자의 도를 배합하여 그 이론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도교의 양생법(養生法)을 강조한 〈참동계 參同契〉의 저자이다. 이 〈참동계〉는 주자(朱子)도 관심을 갖고 〈참동계주석 參同契註釋〉을 펴냈다. 종리권은 금대(金代)에 성립된 전진교(全眞敎)의 종조(宗祖)인 여동빈(呂洞賓)에게 도를 전한 인물로 금단도(金丹道), 이른바 본성적 단학(丹學)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이처럼 조선 중엽의 저술에서 주장되고 있는 도맥은 실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당시 도가적 수련에 심취한 지식인들의 가탁(假託)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들 도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신라 하대와 조선시대 사이의 실존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명백해진다. 즉 조의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는 보다 합리적이고 수련지향적인 전진교 계통의 도교를 받아들인 이 시기 지식인들이 유교적 도통론(道統論)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계통을 밝힐 필요성을 느낀 데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조선에서 수련도교나 도교적 은둔생활의 기풍이 형성되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저술이나 의식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후 조선에서의 단학의 도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도교와 연관된 인물 등의 각종 이적(異蹟)을 기술한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이나 도교 관계의 각종 변증설(辯證說)을 수록한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등 도교 관계 저술들이 연이은 것으로 보아 지식층의 관심이 지대했고, 그러한 생활양식이나 수련법이 꾸준히 맥을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도교는 이외에도 민간신앙이나 의학 및 민간풍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교가 민간신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성수신앙(星宿信仰)이다. 이는 특히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서 고려시대의 팔성당(八聖堂)에서 보듯이 도교적 성수신앙과 고유한 산악숭배가 결합된 조선 특유의 신앙을 형성하였다. 또 민간에서 가신(家神)의 하나로 숭배되는 칠성은 바로 이 도교적 성수신앙의 직접적인 영향이다. 수련적 도교는 본디 예방의학적인 양생법이기에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결과 유명한 허준(許浚)의 〈동의보감 東醫寶鑑〉에는 도교적인 양생법과 세계관이 깊숙한 영향을 미쳤다. 또 도교 계통의 위경(僞經)인 〈옥추경 玉樞經〉은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내용 때문에 민간은 물론 불교에서도 널리 읽혀졌다. 한편 유·불·도 3교를 배합하여 선행을 권장하는 선서(善書)가 조선 초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는데, 그중 선행[功]과 악행[過]을 각각 점수로 매기는 〈공과격 功過格〉이 널리 유포되어 민간의 생활윤리를 앙양하는 데 일조를 했다.

金鎬德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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