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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명분론 (名分論)

 
인간이 각각의 지위에 따른 의무와 규범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도덕적 당위로 내세우고, 그것을 통해 사회질서를 바로잡고자 한 사상.

정명론(正名論)이라고도 한다. 명분은 사회적 질서와 연관되는 인간의 직분(職分)이나 행위의 규범으로 제시되며, 유교뿐만 아니라 선진시대(先秦時代) 제자백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용어였다. 그러나 명분론을 정치사상의 핵심으로 제시한 사람은 공자(孔子)이다. 공자는 춘추 말기의 사회적 혼란이 명(名)과 실(實)의 혼란에서 야기되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이 각각의 지위에 따른 의무와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써 많은 하극상(下剋上)의 현상이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이에 공자는 명분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정명론이다. 정명이라는 용어는 논어자로(子路)편에서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가 "반드시 명을 바로잡겠다"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 정명은 명분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공자가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한 것도 정치에 있어서 정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명의 주요내용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라고 했다. 군신·부자를 비롯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명분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함으로써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자가 말하는 정명은 단순한 명분의 고수가 아니다. 물론 그의 정명론이 인간의 차별적 지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나, 동시에 그 각각의 지위에 합당한 덕의 실현을 촉구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공자의 정명론은 맹자(孟子)혁명론(革命論)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혁명의 가능성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한' 경우이다. 예를 들면 (傑)·(紂)는 명분상 천자이나 그 명분에 대응하는 실(實)로서의 덕을 상실했으므로 이미 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탕(湯)·무(武)의 방벌은 신하로서 천자인 걸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필부(匹夫)를 제거했다는 논리이다. 순자(筍子)는 인간존재의 근본조건을 구별능력에서 구하고, 이 구별능력과 명분을 관련시켜 설명하여 명분론의 논리적 체계를 구성했다. 명분은 위와 아래를 분별하고 친밀함과 소원함을 분별하는 등, 인간이 가지는 분별능력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분수', 곧 위와 아래나 친밀함과 소원함의 분수에서 찾고, 이 분수는 예법과 함께 의리에 근거하여 구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왕(聖王)은 예의를 제정하여 분수를 드러냄으로써 부귀하고 비천함의 등급, 어른과 아이의 차별,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및 유능함과 무능함의 분별을 확립한다"고 했다. 이러한 순자의 사상에서는 정명의 시행은 군주의 강제력을 통해서 가능하므로 공자에 있어 정명의 실천이 인간 내면의 본질로서의 덕에 호소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순자의 명분론은 한대 동중서(董仲舒)의 정명론에 연결되었고, 송대에는 춘추학(春秋學)과 정통론(正統論)의 발흥으로, 혹은 예교(禮敎)의 진작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송대의 명분론에서는 맹자의 혁명론을 명분론적 입장에서 찬성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마광(司馬光)과 이구(李)는 임금과 신하의 분수를 인륜의 최고규범으로 절대화하여 탕왕과 무왕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맹자의 혁명론을 비판했다. 사마광의 〈의맹 疑孟〉과 이구의 〈상어 常語〉는 명분론적 입장에서 맹자를 비판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사마광과 이구의 명분론은 군신지분(君臣之分)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정명(正名)이라기보다 '수명'(守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그의 명분론을 수명론적 명분론이라고도 한다. 사마광과 이구의 맹자 비판에 대해 여윤문(余允文)은 〈존맹변 尊孟辨〉을 저술하여 맹자를 옹호했으며, 주희 역시 〈독여은지존맹변 讀余隱之尊孟辨〉에서 여윤문의 글을 수정·보완함으로써 맹자를 변호했다. 주희의 경우 군신지분의 절대성에 대해서는 사마광에 비해 덜 엄격했던 것으로 생각되나 혁명론에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 역시 혁명론의 실질적인 부정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면을 보인다. 그러나 주희가 강조하는 군신의 명분은 '군신은 의리로 맺어진 관계이며, 의리가 맞지 않을 때는 떠난다'는 사상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신지분의 절대성만을 강조하는 사마광의 수명론적 명분론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려 말기의 역사서 편찬이 춘추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명분론이 사상이나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명분론에서는 명이란 천자(天子)·제후(諸侯)·공(公)·경(卿)·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정치적 지위를 말하며, 분이란 상하·존비·귀천으로 각각의 지위에 따른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하의 차별적 질서 속에 놓인 인간들의 상호관계는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거느리고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을 받드는' 관계이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관계이며, 이러한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예제와 법률이라고 했다. 실제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예제와 법제를 정비할 때 명분론이 그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의 편찬이나 주자가례(朱子家禮) 시행의 의의가 명분론에 의해 설명되었을 뿐 아니라, 〈경국대전〉의 '고존장조'(告尊長條)·'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과 같이 직접 명분론에 따른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제나 법률을 통해서 보면 조선사회에서는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신·부자의 명분론적 관계가 강조되면서, 또 한편에서는 조선사회의 특수한 사정에 의해 노비와 노비주(奴婢主), 수령과 지방주민, 적자(嫡子)와 서얼(庶孼) 사이의 명분론적 관계가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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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30